폭식을 하게 된 이유 1

송성례
2023-03-06
조회수 248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면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 아이들은 정신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병이 있어서 자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 해서 폭식을 한다고 한다.


부모님의 애정이 그리운 아이들도 폭식을 하며

스트레스 쌓인 성인들도 폭식을 한다,

가난해져 경제가 나빠져도 폭식을 한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가장 예쁠 나이에 폭식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폭식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원래 입이 짧던 내가,

너무 말라서 다들 걱정하던 내가,


원래 싫어했던 빵과 과자들,

파스타와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먹기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음식이 앞에 있으면 3접시 4접시는 기본으로 먹었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4개는 먹어야 배가 찼다.



절대로 살이 안 찔 거 같았던 나는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워낙 말랐었기에 사람들은 칭찬을 해주었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이 6년 동안 살던 집이 은행으로 넘어가고부터

나는 이렇게 먹기 시작한 것 같다.







오빠나 나 둘 다 미국에서 살면서 유행이나 멋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정말 아무거나 입었다.


얼굴은 까무잡잡했으며

눈은 작았고

코도 낮았다.


엄마와 오빠 아빠 다 있는 쌍꺼풀이 없었으며, 엄마의 높은 코는 오빠만 가져갔다.

나는 말랐었으며 미국 아이들 사이에선 그냥 막대기 수준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못난이였다.

나는 결코 그렇다고 생각 안 했으면 신경도 안 썼지만,

사람들은 나를 웃으며 재미있으란 듯이 못난이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나는 소심했고 힘들었다.



미국에 어렸을 때 이민을 간 후부터,

나는 소심해졌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노는 쉬는 시간이 너무나도 싫었고 힘겨웠다.

중학교 때까지 나는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는 것까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나는 달라졌다.

외모는 똑같았지만 내면이 강해지고 아름다워졌다.


나 자신을 인정하였고, 못생긴 것에 대한 불만이나 부정적이 생각 또한 없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대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철 없이 예쁜 사람 잘생긴 사람을 동경하기보다는

내면이 동경하기보다는 찾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로 나 자신을 성장시켜 나갔다.

나는 발표를 잘하는 학생이 되었고, 말을 할 때 정말 예쁘게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른스럽다, 성숙하다 그리고 생각하는 게 너무 예쁘다는 말이

나의 못생김을 채워주고 있었다.



이렇게 일 년 이 년이 지나가면서 나는

자신감과 더불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었다.


내 눈에 나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예쁜 사람이었다.







고2 때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갑자기 집안 경제사정이 나빠졌다.

집은 은행에 들어갔고, 우리는 가족 넷이서 방 한 칸 짜리 집에 살아야 했다.

그 후,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우리 가족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반대편에 있는 시카고로 가셨다.



시카고에서도 경제적인 면은 나아지지 않아, 오빠는 미군을 들어가 독립을 했고

나는 고1 때부터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나는 경제적 어려움이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 했다.



자존감이 형성이 되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나는 어려움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학원 보조강사, 안내원, 플루트 과외... 등등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경제적으로 부모님을 도와드리면서 독립까지 했다.



학교에서는 쉽게 친구들과 친해졌을 만큼 나는 내가 잘하고 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카고에 왔을 때부터

많이 먹기 시작했다.



빵과 떡을 사랑하게 되었고, 입이 심심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살이 찌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거울을 보며 울어버렸다.

항상 매일 못생겼던 내가 처음으로 내 눈에도 못생겨 보였다.



못생겼는데 뚱뚱하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2 0